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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일지) 임신 8주차 와이프 케어 #6. D+28(2025.1.10)

뚝딱스홈 2025. 1. 11. 00:46

남편일지) 임신 8주차 와이프 케어 #5. D+28(2025.1.10)

 

세줄요약:

1. 참고 인내해야 한다.

2. 입덧. 끝없는 바이오리듬과 수면.

3. 좀 움직였으면 싶다.

 

D+20

 

직장인은 힘들다. 그냥 뭔가 힘들다. 회사에서 특별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무언의 심리와 심리전과 눈치와 분위기가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단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일시적인 감정일 수는 있어도 퇴근 후의 나에게 의욕을 불어넣고 움직이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참 힘든 것 같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역시나 쓰러져 있는 와잎님. 식사는 잘 했나 싶어 물어보니 늦은 점심으로 평소 즐겨먹던 식당 체인점에서 스파게티와 감튀를 시켜먹었다고 했다. 파스타는 거의 먹지 못하고 버린 것으로 추정되고 몇개만 주워먹은 것 같이 보이는 감튀 봉투만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평소 감튀 광인 나에게 식은 감튀는 문제되지 않았다. 마침 저녁 회식도 있었던 터라, 술기운에 허기진 느낌을 참지 못하고 눈앞의 감튀를 쓸어 담아버렸다. 

이것도 다 먹질 못하다니.. / 감튀의 맛은 중요치 않고 감튀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알콜 냄새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라는 핑계로 감튀를 해치운 뒤 빠르게 씻고나와 와잎님에게 굿나잇 인사를 던지고 방에 들어가 잠에 들었다. 사실 술을 마셨기에 가까이 가기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지만 뭔가 피곤했던 감정에 빨리 잠들었던 것 같다.

 

D+22

 

무난한 금요일을 보내고, 새해 첫 주말을 맞이했다. 와잎님의 상태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계속 운동을 시키고 새로운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다니기 좋아하던 마트 구경과 카페를 가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이셨다.(카페라고 해봤자 스벅가서 같이 컴터하고 논다)

아 참, 그 전에 주말 아침이므로 당연히 일찍 일어나 청소하고 빨래하고 물을 끓이는 작업은 이미 마친 상태였다.

시중에 파는 보리차 말고, 보리를 끓이면 색이 매우 투명하고 맑다. / 김장에 쓸 재료들과 입가심으로 산 도시락. 도시락은 전부 내 입속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김장을 시작. 처음에 우려하던 건 액젓이나 마늘과 같은 냄새 때문에 과연 얼마나 버티며 김장을 할 수 있을 지 걱정되었으나 생각보다 현지의 맛없는 김치를 먹느니, 어머님의 레시피로 본인이 직접 만든 김치를 만들겠다는 집념이 입덧보다 강했던 것 같았다. 말끔하게 김장을 마무리하실 동안 나는 와잎님이 냄새에 집중하시기 전에 얼른 설거지를 끝냈다. 작년에 김치를 만들었다 맛이 없다면서 그 김치를 다 먹을때까지 기분 안좋아하던 님을 위해(난 솔직히 맛있었다) 이번에는 김치를 맛보라고 입에 넣어주는 순간부터 맛있는 리액션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쓸데없는 생각을 못하게끔 만들어야지 다짐했다. 오 근데 이게 왠걸 저번보다 더 맛있어졌고 본인도 만족해했다.

이케아에서 스댕 볼을 샀으나, 만족하시지 못하고 전통 다라이를 구매하셨다.

겉절이를 좋아하는 나와 반대로 익은 김치를 좋아하시는 님께서는 김치가 익을 수 있도록 조치해둔 뒤, 돈돈돈키에서 파는 스키야키가 먹고싶다고 했다. 어쩌겠나 바로 출발해야지. 평소 택시를 타지 않는 나지만 과감하게 그랩을 불러 편안한 저녁식사를 하실 수 있게 배려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금 먹고싶다고 하신 도시락을 팔던 곳은 다른 지점의 돈키라 혹시나 없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서 걱정이란 생각에 일단 찾아보자 하고 봤더니 여기선 안파네.. 얼마 크지도 않은 매장을 6번 이상 돌고 계신 듯한 발걸음.. 아 오늘은 조졌다 어떤걸로 이걸 만회해야 하지 고민하면서 눈치를 보는데 그래도 여기 있던 다른 음식들로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고맙읍니다.

남으면 다 내 뱃속으로 들어가니 적정량을 시켰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저녁을 대충 수습하고 집에 가는길, 갑자기 헤이티가 먹고싶다고 하여 바로 헤이티 매장으로 고고. 컨디션이 썩 좋지 않으신 님이었지만 헤이티 줄은 또 잘 기다리신다.. 잘 기다려줘서 고맙단 의미였다. 정말 게임 속 체력 포션처럼 원하는 음료와 당이 흡수되니 일시적으로 체력과 기분이 함께 업. 집까지 돌아갈 체력과 여유를 되찾았다.

너무 시다. 그래도 꽤 많은 양을 드셨고 혈당과 함께 컨디션도 일부 올랐다.

D+24

 

부지런하지 못한 성격에, 이 글을 몇일 간격으로 몰아서 쓰고 있는데,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경우에는 메모장을 켜서 써두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진으로만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데 사진이 없는 날이 많아지고 있는걸로 봐선 벌써 기록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이번주 동안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 주말까지가 약발의 한계였던 것일까. 이번주 화요일(D+25)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요거트+그래놀라+사과 조합으로만 식사를 하셨고 그것마저도 한끼만 먹었다. 그리곤 수요일, 목요일에는 또 밤중에 대부분을 게워 내셨다..

너무 속상하구나..

매일 해먹는 식사가 되어버렸다.

 

D+25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저녁엔 뭘 먹고싶은지 물어보는게 일상이다. 오늘은 갑자기 핏자가 먹고싶다고 얘기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뭐라도 먹으라고, 퇴근길에 바로 도미노피자를 주문했고 시간맞춰 집에 도착했다. 콜라는 특별히 논카페인 콜라. (맛대가리 없어서 내가 다 마심)

큰거 다 먹어. 결국 내가 한반 반을 먹었다.

D+27

 

피자 이후로 또 게워내시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만큼 체력이 따라와주지 않으니 움직이기 귀찮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좀 햇빛도 보고 움직여 주고 멍멍쓰 산책도 시켜주고 (겸사겸사) 에너지를 소비했으면 싶다. 나는 아픔도 약간 악의 순환고리 같다고 느끼는게 아플때 아픈 것에 집중하면 긍정적인 생각들은 사라져 버리고 개미지옥 같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몸과 마음이 흘러가면서 고통이 한층 더 심화된다고 생각한다. 아플 때일수록 햇빛을 보고 비타민 디 합성하고 움직이고 에너지를 쏟아내야 맑은 정신이 유지된다고 믿거든요. 아무튼 저녁을 먹이기 위해 이것저것 스무고개를 한 결과 단무지에 컵라면. 머 영양이나 인스턴트를 따질 때가 아니기 때문에 퇴근길에 바로 사서 귀가. 그래도 적당히 먹은 것 같다 다행이었지, 먹고나서 또 쇼파에 기대어 취침을 하셨다.

먹었으니 된거다. 단무지 썰고 컵라면 1+1/2를 먹었다.

 

D+28

 

갑자기 먹을 걸 제안해왔다. 중국식당에서 꿔바로우랑 이것저것이 먹고싶단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캍뢰를 할테니 택시타고 식당에서 바로 만나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칼퇴를 할지, 해야할 일은 다 끝날지 고민고민하고 있는데, 택시를 부르기 직전 속이 안좋아서 식탁 의자에 앉아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에휴 어쩔 수 없지. 그럼 집 근처 중식당에서 시켜먹자. 그래도 생각보다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와잎님이 원하시는 메뉴들로 주문을 넣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이기에 픽업을 하여 들고 집으로 갔고 오 이번엔 굉장히 많이 드셨다. 나도 와잎님도 매우 만족하는 식사를 했고 지금은 또 쇼파에 기대 주무시고 계신다.

오늘은 와잎님이 나한테 계속 게워내는 고통을 받고 있다보니 배가 고파도 먹기가 두렵다는 말을 했다. 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쩌겠나 계속 먹어야지.. 

기분 좋은 와잎님이 직접 직어주신 오늘의 저녁식사. 생각보다 비싸다. / 골드키위 노래를 부르셔서 두팩을 사와 후식으로 깎아 드렸다.

다음주엔 휴가를 내고 같이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데, 이상 없이 잘 마쳤으면 좋겠다. 아 생각해보니 어제 산후조리원도 드디어 결정을 하고 순식간에 예약을 진행했다. 가슴을 후벼오는 산후조리원 비용은 다음 번에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피곤하니 글을 줄인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 눈에 들어오는 커피머신은 내일 아침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마친 후 여유롭게 노래를 Adam A5X로 들으면서 커피를 내리고 커피와 음악의 맛과 향과 사운드를 음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