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일지) 임신 7주차 와이프 케어 #4. D+15(2024.12.28)
세줄요약:
1. 약이 최고다
2. 정말 약이 최고인가?
3. 재정난
D+15
역시나 주말 아침은 상쾌하게 시작한다. 항상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면서, 눈뜨고 인스타 눈팅좀 하고 가끔 게임좀 하고) 설거지, 빨래, 쇼파 청소, 거실 청소, 방청소 순서로 일을 진행한다. 집에서는 생수 대신 차를 끓여먹기 때문에 세탁기를 돌려놓고 청소하는 틈을 놓치지않고 물을 끓여 보리차를 만든다. 최근 와잎님이 입덧을 시작한 때부터 나에게서 나는 향기를 인지하면서 우리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덕분에 조용히 일어나 위 업무를 순차적으로 마치고 깨끗해진 쇼파에 앉아 나름 고가에 구매한 스피커에 유튜브 뮤직을 틀고(고품질 스트리밍을 사용하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취소했다..) 가만히 앉아 다음 일정을 고민해봤다.
보통은 카페구경을 가거나 브런치를 간단히 먹거나 장을 보자고 제안했을 테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외출은 불가능할 것 같아 이를 핑계로 주말 내내 게임을 하고 웹툰을 보리라 다짐했다. 기쁨에 도취되기 전, 방에 들어가 와잎님의 상태를 점검했다.
잘 잤어? 오늘은 좀 괜찮아..?
너무 안좋았다. 아니 안좋다고 대답하더라.. 멀찌감치 떨어져 물어본 나에게 혹시 병원에 전화해서 미리 방문할 수 있을지를 물어봤다. 티적 사고로는 ' 1. 이 나라 의료시스템상 가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2. 예약했던 날짜가 1/3 인데, 빨리 예약 시도해봤자 자리 없다고 할거다. (있었음 해줬겠지) ' 이런 생각을 했지만 우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전화를 시도했다. 오늘은 너무 빠르게 눈이 떠져 8:40에 전화를 시도했지만 병원 오픈 전이어서 나중에 확인 후 연락을 주기로 한 뒤 두시간 정도 대기했다. 그 와중에 화장실 가시는 그녀.. 티적 사고를 했던 나였지만 화장실 사운드를 들으니 또 속상해지면서 어떻게든 조치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신기하게도 병원 측에서 연락이 오더니 점심시간에 자리가 있다면서 예약을 잡을지 나에게 물어봤다. 당연히 예스. 거침없이 예약을 잡고 나서 번뜩이는 생각은 ' 다행이다 + 주말이면 추가비용이 크겠구나 ' 였다. 절대 돈이 아깝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고 이 나라의 거침없는 가격 수준을 고려할때 얼마나 붙을지가 아주 조금 걱정되었기 때문인 것이니라..
그 이후는 순조로웠다. 몸을 진정시키고, 택시를 잡고,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창문을 활짝 열고 병원으로 달렸다. 중간중간 위기상황이 있었으나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고 처음 오는 낯선 동네와 병원 구조에 놀라면서 진료를 받았다.(병원 구조에 대해서는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한번 글을 써봐야겠다.)
아주 친절하신 선생님 덕분에 진료를 잘 받았고 초음파도 문제없이 끝났다. 아기가 잘 자리잡았고 7mm정도 자랐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며 심장소리를 들려주시는데, 140bpm으로 들리는 심장박동소리에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새 생명이 깃들었거니 게임의 한 에피소드같이 느껴졌다. 초음파 사진을 들고 진료를 마치면서 입덧이 너무 심함을 토로하며 입덧약을 요청드렸고 처방해주셨다. 아, 입덧약이 비싸니 우선은 3일치만 처방해주신다고 하셨다.
진료를 마치고 얼른 계산하고 집으로 가야지,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와잎님은 바로 화장실로 직행.. 이때마다 너무 속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와잎이 돌아오고 나서 안내해주시는 선생님이 영수증을 주시면서 지금 약을 먹겠냐고 친절히 물어봐주셨고 당연히 바로 예스. 그 자리에서 약을 먹고 병원을 나섰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직 속이 안좋으신 님을 위해 스타벅스에서 달달한 음료와 허기진 내 배를 채우기 위한 샌드위치 하나 주문. 혹시나 싶어 멀리 떨어져 앉아서 먹어치운 후 합석했다.
돌아오는 택시에서 오늘 진료비가 얼마나 나왔을까 슥 영수증을 살펴보는데, 이럴수가.. 와우! 다행히 주말 추가비용은 크지 않았는데,(세금 포함 3만원 정도 추가) 진료비 자체가 40만원이 나왔다 와후.. 비싸다고 감은 잡고 있었고 웹써칭으로 열심히 조사해본 바로는 초음파 등등 대략 2-30만원 안팎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40이라니... 워워 굉장하구나 너.. 약값은 3일치 3만원. 머 괜찮네? 생각했는데 가만보자 이게 한달이면 30에 입덧 2-3개월이면...?? 와..(입덧 몇개월 하는지 혼자 검색해봄)
뭐 어쩌겠나. 우선은! 아무 생각없이 집에 돌아와 와잎님의 상태를 체크했다. 잉? 약효가 바로 나타났는지(의사쌤 말로는 1시간 뒤 약효 난다고 하심) 배가 고프단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갑자기 한식이 땡긴다는 얘기에 바로 한식 주문. 핫도그에 오뎅탕에 뭐였지 김치볶음밥에 하나 더 시켜서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1인분을 전부 먹진 않았어도 요 며칠동안 먹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한끼를 해낸 셈.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밥을 먹고나서 과일도 먹고싶다고 하더니 내가 까준 오렌지도 야무지게 드시는 그녀. 정말 약효가 죽여주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오렌지까지 흡입하고 나서 혹시모를 야밤의 습격을 대비하여 약을 한번 더 드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짧고도 긴 하루였다.